여러분
현재 내가 들고 있는 돈
현재 벌고 있는 돈을
내 돈이라고 생각하지말고
내가 고객의 돈을 받아서
직접 펀드를 운용한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러면
내가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가요
내가 이돈을 탕진할 수 있을가요
언졘가는 환매요청이 들어오면
고객의 원금과 수익난
부분을 다 고객에게 돌려줘야 되는데
그럴러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고객의 돈이라서
종목 한개를 고르더라도
심사숙고하고, 모든 영역을 조사하고
현재 살고 있는 나라들의 경제 상황을
파악해야되고
그런 다음 종목을 선택하고
몇 개월 / 몇 년을 보유할지 고민을
해야 됩니다.
내 돈이 아닌데 함부로 쓸 수 없잖아요.
고객의 돈이 은행에서 빌린 돈이나
같은 것인데
고객이 돈 / 묶여 있는 돈 주세요 하면
바로 줘야 되는데
이 돈을 함부로 쓸 수 있을까요
한푼도 못써지요.
수수료을 조금 받은 돈으로 생활을
해야되는 것이
펀드매너저 입니다.
자신이 펀드매니저라고 생각하고
주식을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내가 처음에 주식
(콜골리움, 카이저 스틸, 미션 보험,
라 퀸터 뫁텔 제인, 20세기 폭스,
해인스 등)들은 상장이란 것 외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였다.
처음부터 나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다양한 종목들로 펀드를 구성하는 데
매력를 느꼈다.
또 하나 특징적인 점은
애널리스트로 일할 때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했던 화학기업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78년 3월 31일,
마젤란펀드를 맡아 운용한 지 10개월
됐을 때 운용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 표지에는 정교하고 오래된 남미
해안선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 지도에는 여러 가지 해안선 후미와
이름들이 표시돼 있었고 표지 가장자리에는
남미 최남단인 혼곳을 향해 즐겁게 향해하는,
아마도 마젤란이 이끄는 것으로 추정되는
매력적인 갤리온선 3대가 그려져 있었다.
후에 마젤란펀드가 더 커지고 복잡해졌을 때
표지의 지도는 더 단순해졌다.
지도의 후미와 강에서 스페인 이름이 사라졌고
갤리온선도 3대에서 2대로 줄었다.
1978년 3월에 발간된 운용보고서를 보면
마젤란펀드는 12개월간 20%가 오른 것으로
나와 있다.
같은 기간에 다우존스지수가 17.6% 하락했고
S&P500지수는 9.4% 떨어졌다.
마젤란펀드가 이러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새로 편입한 종목들 덕분이었다.
나는 주주들에게 보고서를 보낼 때마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데 당시에는 투자 전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해놓았다.
"자동차, 항공, 철도, 공해산업, 유틸리티
화학, 전자, 에너지 비중을 낮추고
금융기관, 방송, 엔터테인먼트, 보험,
은행, 소비재, 숙박, 대여업 등의
비중을 높였다."
10개월간 이 모든 것을 50개 미만의
종목으로 구성된
2000만 달러 규모의 포트폴리오에 담았다.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전체적인 전략을 세워본
적이 없다.
종목 선택은 전적으로 경험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냄새를 쫓아 추적하도록 훈련 된
경찰견처럼 한 종목에서 다른 종목으로
옮겨 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나는 펀드 내에서 특정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전개되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에 더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펀드 내에서 방송산업의 비중이 전체 산업에서
방송산업의 비중이 전체산업에서
방송산업이 차지하는 비주와 비교할 때
높은지 낮은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보다는 TV 방송국을 소유한 기업이
왜 지난해보다 올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지에
관심을 뒸다.
어떤 방송국 관계자가 방송산업이 개선되고 있다며
최근 가장 주목받는 방송사가 어디라고 말했다면,
나는 세부적인 사항을 점검하고 대개는 2등
방송사의 주식을 샀다.
나는 사방에서 풍기는 냄새를 쫓아다니며
실증적으로, 경험적으로 종목르 찾아 다녔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산업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이
반드시 위험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마젤란펀드는 일반 주식형 펀드였기 때문에
어떤 주식이든 살 수 있었다.
모든 종류의 미국 주식은 물론
해외 주식, 심지어는 채권까지 살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냄새를 쫓아 경험적으로 주식을
찾는 경찰견식 종목 발굴 방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나는 성장펀드매니저의 종목 선정 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었다.
성장펀드매니저들은 전체 성장형 주식들이
고평가됐을 때에도 어쩔 수 없이
고평가된 혁신기업의 주식을 사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성장펀드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최악의 종목들 중에 그나마 가장 괜찮을
것을 골라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어떤 주식이든
조사할 수 있었다.
그러다 알루미늄 가격이 올라가고 있어
알루미늄 회사인 알코이의 이익이
반등할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1978년 1월에 우리는 마젤란펀드 투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젤란펀드의 포트폴리오는 세 종류의
주식들로 구성돼 있있습니다.
재료보유주, 저평가 경기민감주, 중소형 성장주"
이는 우리의 포트폴리오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못하므로 1년 후에는 투자하는 주식에 대한
정의가 다음과 같이 확인됐다.
"마젤란펀드는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주식에
투자해 자본이득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주식은 주로 5가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중소형 성장주, 전망이 개선되고 있는 주식,
불황를 겪고 있는 경기민감주,
고배당 성장주, 자신의 본질 가치가 저평가되거나
시장에서 무시되고 있는 주식들이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해외 주식들도 마젤란펀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식시장에서 팔리고 있으면 우리는 샀다.
유연성이 핵심이었다.
시장에는 어디엔가 언제나 저평가된 주식이
있게 마련이다.
마젤란펀드 운용 초기에 가장 큰 수익을 거둔
두 기업은 주요 석유회사인
유노킬과 로열 더치였다.
사람들은 2000만 달러 규모의 펀드는
규모가 큰 석유회사 같은 주식은 무시고
수익률이 더 높은 중소형중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로열 더치가 실적이 크게 호전되고
있음에도 월스트리트가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치를 샀다.
마젤란펀드가 규모가 작은 별 볼일 없는 펀드였을 때도
나는 어느 순간 마젤란펀드 전체 자산의 15%를
유틸리티로 채웠다.
당시 마젤란펀드는
항공기 제종업체 보임,
조선업체 도트 조선소
페업 재공정리 소매업체 픽 엔 세이브
장례 대행 산업의 맥도날드라
할 수 있는 서비스 코페레이션 인터내셜널
등에 투자하고 있었다.
마젤란펀드의 주요 성공 요인으로 자주
거론되는 성장주가 마젤란펀드
내에서 50% 이상 차지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나는 어떤 주식을 선택한 이유를 끊임없이
찾으며 나 자신을 방어하기보다는
지금 갖고 있는 주식보다 더 좋은 주식을
찾아다니는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예를 들어 내가 산 주식이 예상과 달리
수익률이 좋지 않을 때 그 주식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하는 새로운 이유를
찾아내려고 고심하지 않았다.
사실 월스트리트의 많은 전문가들이
아직도 새로운 변명거리를 생각해내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지만
말이다.
반대로 나는 지금 갖고 있는 주식보다 더
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해 더 좋은
투자기회를 찾으려 노력했다.
전반적으로 주식시장이 좋았던
1979년에 마젤란펀드는 51%
급등했고 S&P500지수는 18.44% 올랐다.
나는 그해 연례 운용보고서에서
마치 처음부터 무슨 전략을 갖고 종목을
골라 투자한 것처럼 그럴 듯하게 전략을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숙박, 외식업, 소매업의 비중을 높였다"는
것이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사업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페스트푸드 업체에 마음이 끌렸다.
한 지역에서 성공한 외식 체인점은
다른 지역에서도 성공을 반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나는 타코벨이 캘리포니아에서
많은 매장을 열어 성공한 뒤 동쪽으로
서서히 매장을 늘려나가며 그 과정에서
매년 이익이 20-30%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한 미국 시골식 음식을 파는 외식 체인점
크래커 배럴의 매장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렌트한 자동차에 있는 지도를 보니
묵고 있는 앨틀렌타 시내 호텔에서
베이컨까지는 불과 몇 마일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몇 년 마일이라고 생각했던
거리는 100마일 이상이었고
도로가 혼잡한 퇴근시간대가 겹치면서
메이컨까지 3시간이나 걸렸다.
그래도 결국 크래커 배럴에서 맛있는
메기 요리를 먹을 수 있었고
크래커 배럴의 전반적인 운영상황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마젤란펀드는 크래커 배럴에 투자해
50배 수익을 냈다.
이 때문에 나는 가장 중요한 50개 종목
목록에 크래 배럴을 포함시켰다.
또한 소비자가 직접 제가하는 데 필요한
주택 수요 공구 및 조립식 가구를
판매하는 소매업체도 방문해 크래커 베럴과
비슷한 현장 조사를 했다.
그 소매업체는 앤틀렌타에 자리한 홈데포였다.
나는 홈데포 매장에서도 나사와 볼트,
벽돌, 희반죽 등 다양한 종류의 주택 수리용
폼이 진열된 모습과 저렴한 가격,
주택 수리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직원들,
친절하고 예의 바른 서비스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간이 있을 때 집에 페인트칠를 하거나
고장 난 수도관을 고치려는 사람들은
제품 종류도 한정되어 있고
가격도 비싼 동네 가계에 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
당시는
홈데포 초기 단계로 주가는 25센트
(후에 있을 액면분할을 미리 반연한 가격)에
불과했다.
나는
홈데포 매장을 직접 가본 뒤 주식을 샀으나
그 뒤 흥미를 잃어버려 1년 후에 팔아버렸다.

위 그래프는 홈데포의 주가챠트다.
나는 이 차트를 볼 때마다 엄청난
후회를 한다.
15년간 25센터에서 65센트까지 260배가
폭등한 주식을 상상해보라
그런 기업의 초창기 모습을 지켜봤으면서도
잠재력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홈데포가
뉴잉글랜드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아니면
내가 필립스의 드라이버와
슬로 진 피즈의 차리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만 됐다면 이처럼 멋진
기업을 오판하는 실수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장난감 소매업체인 토이저러스 역시
너무 일찍 팔아버렸다.
나의 펀드매니저 인생에서
홈데포와 토이저러스는 최악의
매도주문이었다.
1979년에 마젤란펀드는 홈데포 없이도
큰 성공을 거뒀다.
1980년에도 역시 69.9%의 높은 수익률로
S&P500지수의 상승률 32%를 두배 이상
압도하며 투자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줬다.
당시 마젤란펀드에서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던 업좋은
게임(정확히 말하면 골드 너겟과
리조트 인너내셔널)
보험, 소매업이었다.
나는 편의점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홈-인 푸드와 픽 엔 세이브,
숍&고, 스톱&숍, 션샤인 주니어 등을
한꺼번에 사기도 했다.
마젤란펀드를 맡아 운용하던 초기 시절을
돌아보면 종목 교체 속도를 의미하는
회전율에 새삼 놀란다.
41개 종목을 보유하고 있던 첫 해에는
회전율리 34.3%였고
그 후 3년간 매년 300%였다.
1977년 8월 2일부터
마젤란펀드를 운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보유하고 있던 종목의 30%를
팔았고
그 이후에도 정신없는 속도로
석유회사, 보험회사, 소비재 등을
매달 샀다 팔았다 반복했다.
1977년 9월에 몇 개의 경기민감주를 사고
11월에는 그 중 일부를 팔았다.
패니 메이와 헤인스는 그해 가을에 샀는데
다음 해 봄까지 보유했다.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도
콘골리움에서 시그널 컴퍼니즈로
그 다음에는 미션 생명보험으로
다시 토드 조선소
그리고 나서
스테이크 전문점인 판다로사
순으로 바뀌었다.
피어1 역시 보유 종목에 편입됐다가
사라졌고
포-페이즈라는 흥미를 자아내는
이름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 달을 주기로 포-페이즈를 샀다 팔았다
했던 것 같다.
포-페이즈가 마침내 모토로라에 인수되어
나는 포-페이즈를 샀다 팔았다 하는 일은
그만둬야 했다.
지금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포-페이즈는
컴퓨터 단말기와 관계가 있는 회사였다.
하지만
그 회사가 어떤 사업을 했는지 대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돈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보스턴 외곽 128번 고속도로 주변의
유명한 벤처 산업단지인 루트 128에 있는
기술기업 대다수도 마찬가지다.
나는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갑작스럽게 팔고
다른 주식으로 빈자리를 채우고 했다.
이런 급격한 종목 변경은 운용정책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기업을 반문했다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기업보다 새 기업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존에 투자했던 기업과 새로
발견란 더 좋은 기업을 함께 보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계속 환매를 요청하는 작은
펀드에서 그런 생각은 사치에 가까웠다.
막 발견한 더 좋은 주식을 사기 위해선
기존에 갖고 있던 무엇인가를 팔아야 했다.
나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사고 싶어 했기
때문에 언제나 무엇인가를 팔아야 했다.
나는 매일 전도유망한 새로운 기업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이런 새로운 기업드은 어제 들었던
유망 기업들보다더 흥분되고 좋은
기회로 여겨졌다.
종목을 자주 교체했기 때문에
연차보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투자자들이
합리적이고 분별 있는 매매였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설명하느라
어려움을 겪곤 했다.
어떤 해에는 "마젤란펀드른 주가가 많이
오른 경기민감주에서 매출과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비경기민감주로 종목을 교체했습니다."
라고 전략을 요약했다.
다음 해에는 "마젤란펀드는 경기둔화로
이익이 줄어들 수 있는 기업에 대한
비중을 줄였습니다. 그러나 마젤란펀드는
저평가된 것으로 보이는 경기민감주에는
계속 상당 자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라는 내용으로 전략을 바꿔 기술하기도 했다.
지난 연차보고서를 조사해보니
몇 달간 갖고 있다 팔아버린 주식들 중
상당수는 좀 더 오래 보유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투자한 주식에 대한 주조건적 충성심이
아니다.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변해가는 기업들을
계속 보유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팔어버려 후회되는 주식 목록에는 주가가
300배나 뛰어오른 위대한 성장주인
슈퍼마켓 체인점 알버손스,
마찬가지로 300배 수익이 가능했던 토이러스,
이미 위에서 언급했던 픽 엔 세이브
어느 기술적 분석가가 팔라고 했던
워너 커뮤니케이션
5달에서 샀다 10달러에서 팔아치우고
2년 후 주가가 70달러로 폭등한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던
페덱스 등이 포함돼 있다.
작은 기회에 눈이 어두워 이런 위대한
기업들을 버린 나는 주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꽃은 뽑아버리고 잡초에
물을 주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다.
나는
"꽃은 뽑아버리고 잡초에 물은 준다"는
표현을 아주 좋아하는데
어느 날 워런 버핏이 전화해
연찬보고서에 이 표현을 아주 좋아하는데,
어느 날 워런 버핏이 전화해 연차보고서에
이 표현을 쓰고 싶다고 나에게 허락을
구했다.
워런 버핏은 뛰어난 투자 통찰력뿐만
아니라
글 솜씨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연차보고서에 인용된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했다.
소문에 따르면
어떤 투자자들은 버핏이 작성하는
각종 보고서를 받아보기 위해 그의
투자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
1주를 사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버크셔 해서웨이가 발행하는
각종 보고서는 역사상 구독료가 가장
비싼 잡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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