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임원이 된 남자
한빛그룹 본사에는 이상한 소문이 있었다.
인사팀장 최성호에게 찍히면 회사 생활이 힘들어진다는 소문이었다.
성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직접 해고하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부서를 계속 바꾸는 것이었다.
영업부에 보내고,
몇 달 뒤 생산관리부로 보내고,
다시 구매부로 보내고,
이번에는 물류팀으로 보내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뺑뺑이 인사"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몇 번만 겪어도 지쳐버렸다.
어느 날.
신입사원 출신의 대리 박진우가 성호의 눈 밖에 났다.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회의에서 진우가 데이터를 근거로 의견을 냈는데, 성호의 생각과 달랐던 것이다.
그날 이후 성호는 진우를 좋게 보지 않았다.
몇 달 후.
진우는 영업부에서 생산관리부로 발령이 났다.
동료들은 혀를 찼다.
"찍혔구나."
"안 됐다."
"이제 고생 시작이다."
하지만 진우는 웃었다.
"생산관리도 배울 수 있겠네요."
동료들은 어리둥절했다.
생산관리부에서 진우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공정 흐름을 배우고,
원가 구조를 공부하고,
현장 직원들과 친해졌다.
1년 뒤.
생산관리 업무를 익힐 무렵.
다시 발령이 났다.
이번에는 구매부였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번에도 찍혔네."
"왜 저렇게 돌리지?"
그러나 진우는 또 웃었다.
"원재료가 어떻게 들어오는지 배울 수 있겠네요."
구매부에서 그는 공급망 관리와 협상 기술을 배웠다.
협력업체 대표들과 만나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가격 결정 구조를 이해했다.
2년 후.
다시 발령이 났다.
물류팀이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저 정도면 괴롭히는 거 아니냐?"
"불쌍하다."
하지만 진우는 여전히 긍정적이었다.
"이번에는 물건이 고객에게 가는 과정을 배울 수 있겠네요."
물류팀에서 그는 창고 운영과 운송 시스템을 배웠다.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재무팀.
품질관리팀.
마케팅팀.
전략기획팀.
회사의 거의 모든 부서를 경험했다.
10년이 흘렀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진우는 회사에서 가장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영업 이야기를 하면 이해했다.
생산 이야기를 해도 이해했다.
재무 보고서를 봐도 읽을 수 있었다.
물류 문제도 알고 있었다.
품질 이슈도 설명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회장이 임원 회의에서 질문했다.
"최근 원가 상승 원인이 뭡니까?"
임원들은 각자 자기 부서 관점으로 설명했다.
그때 진우가 말했다.
"구매 비용 증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산 공정 변화와 물류비 증가가 동시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는 각 부서 데이터를 연결해 설명했다.
회장은 흥미롭게 바라봤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압니까?"
진우는 웃었다.
"제가 직접 그 부서에서 일해 봤습니다."
몇 년 후.
임원 승진 발표가 있었다.
놀랍게도 박진우가 상무로 승진했다.
직원들은 놀랐다.
"저 사람 예전에 뺑뺑이 인사 당하던 사람 아니야?"
"맞아."
"그런데 임원이 됐네."
그 무렵.
최성호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퇴직 인사를 하던 날.
그는 진우를 따로 불렀다.
"진우 씨."
"네."
"사실 하나 말해줄까?"
"말씀하십시오."
성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자네를 힘들게 하려고 부서를 계속 옮겼네."
진우는 잠시 놀랐다.
그러나 곧 웃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알았다고?"
"네."
"그런데 왜 불평하지 않았나?"
진우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사는 학교보다 큰 배움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부서에 가든 배울 것이 있었으니까요."
성호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진우는 계속 말했다.
"처음에는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차피 가야 한다면 배우자."
"어차피 해야 한다면 익히자."
"그래서 임원이 된 건가."
진우는 미소 지었다.
"임원이 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매번 새로운 곳에서 배운 것을 버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퇴직식이 끝난 후.
성호는 홀로 회사를 둘러보았다.
그는 누군가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던 인사가,
결과적으로는 한 사람을 회사 전체를 이해하는 인재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몇 달 후.
진우는 새로운 임원 교육에서 젊은 직원들에게 말했다.
"원하지 않는 환경에 놓일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을 찾는다면 경험은 자산이 됩니다."
회의실의 젊은 직원들은 조용히 들었다.
그날 진우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은 장애물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계단으로 사용합니다."
"결국 어디까지 올라가느냐는 장애물의 크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회사의 거의 모든 부서를 거쳐,
누구보다 넓은 시야를 가진 임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