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척하는 사원
중소기업 영업지원팀에는 김도현 대리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회의 시간마다 큰소리를 냈고, 부하 직원들의 실수를 지적하는 데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업무 지식은 부족했고,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면 누구보다 먼저 당황했다.
그런데도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늘 한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이것도 모르나?"
"그런 식으로 일해서 사회생활 하겠어?"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겠네."
부하 직원들을 깎아내리며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었다.
팀원들은 뒤에서 그를 "가스라이팅 대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신입사원 이민수가 입사했다.
민수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그는 도현의 문제를 알아챘다.
도현은 늘 남을 비난했지만 정작 구체적인 해결 방법은 알려주지 못했다.
회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수 씨. 이 자료 왜 이렇게 만들었어?"
"어떤 부분을 수정하면 될까요?"
"그걸 내가 다 알려줘야 하나?"
"예. 정확한 기준을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도현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수는 전략을 세웠다.
정면으로 싸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철저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대리님, 이 문서는 어떤 양식으로 작성할까요?"
"대리님, 이 수치는 어떤 기준으로 계산할까요?"
"대리님, 고객에게는 어떻게 설명할까요?"
"대리님, 메일 제목은 어떻게 작성할까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질문했다.
물론 정말 몰라서가 아니었다.
확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도현도 의기양양했다.
"봐라. 결국 나한테 물어보잖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이상해졌다.
"대리님, 이 계약서 검토 부탁드립니다."
"알아서 해."
"어떤 부분을 기준으로 검토할까요?"
"그냥 해."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대리님 기준으로 수정하겠습니다."
"...잠깐 줘 봐."
며칠 뒤.
"대리님, 고객 할인율을 얼마로 적용할까요?"
"10%."
"알겠습니다. 메일에 대리님 지시로 10% 적용했다고 기록하겠습니다."
"...아니. 잠깐."
도현은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7%로 해."
점점 모든 결정이 도현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민수는 모든 내용을 메일로 남겼다.
"대리님 확인 요청드립니다."
"대리님 승인 부탁드립니다."
"대리님 지시사항 반영하겠습니다."
몇 달 후.
회사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대표가 직접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회의실에는 임원들과 각 팀장이 모였다.
대표가 질문했다.
"이 프로젝트는 누가 실무를 맡고 있습니까?"
도현이 말했다.
"제가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때 대표가 민수를 바라봤다.
"실제 작업은 누가 했죠?"
민수가 조용히 답했다.
"저입니다."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행 과정을 설명해 보세요."
민수는 자료를 하나씩 설명했다.
시장 조사.
원가 계산.
고객 분석.
위험 관리.
대응 방안.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했다.
대표가 다시 도현을 바라봤다.
"할인율 7%는 왜 적용했습니까?"
도현은 당황했다.
"그건..."
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표는 민수의 메일 기록을 확인했다.
수백 개의 업무 확인 메일이 정리되어 있었다.
누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모두 기록돼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대표는 팀장에게 말했다.
"민수 씨는 일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확인 절차를 철저히 한 사람이군요."
"예. 저도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시간은 흘러 2년이 지났다.
민수는 대리로 승진했다.
반면 도현은 더 이상 승진하지 못했다.
큰소리는 잘 쳤지만 실제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회사 전체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후배 직원이 민수에게 물었다.
"선배님은 예전에 대리님한테 그렇게 많이 혼나셨잖아요. 어떻게 버티셨어요?"
민수는 웃으며 말했다.
"싸우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이기셨어요?"
민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일을 모르는 척했을 뿐이야."
"네?"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은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아. 하지만 아는 척만 하는 사람은 질문이 많아질수록 스스로 드러나게 돼."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상대를 무너뜨리려고 하지 말고, 사실이 스스로 드러나게 만들면 돼."
그날도 민수의 책상 위에는 수많은 업무 기록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 조용했지만, 누구보다 신뢰받는 관리자가 되어 있었다.